헌법을 움직인 기후소송 공개변론 1주년, 그린피스가 말하는 법과 기후정의
지난 1년, 우리는 ‘법’을 통해 무엇을 이루었을까요?
‘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온통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 생각납니다. 어기면 비난과 처벌을 받게되는 그런 것들 말이죠. 하지만 지난 몇달간 한국사회는 법이 우리의 일상과 민주주의를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을 보냈고 다행히 그 바람을 이루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한 헌법재판소에서의 변론과 판결. 1년 전에도 이런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공개변론이 열렸다는 거, 기억하고 계신가요?

한 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는 사건은 무려 2,000건이 넘습니다. 그 중에서 헌재가 공개 변론을 여는 경우는 채 10건이 되지 않죠. 2024년 4월, 이토록 흔치않은 헌재의 ‘공개변론’이 시민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을 위해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기후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따져보는 헌정상 최초의 변론이었죠. 우리 사법부가 기후 위기 문제를 ‘중대한’ 일로 인식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정부의 기후 대응이 헌법에 일부 어긋난다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이끌어 낸 대한민국 기후소송의 공개변론이 열린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그린피스는 이를 기념하여,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기후 정의를 실현시키는 도구로서 ‘법’과 ‘소송’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글로벌 기후소송 워크숍’을 개최하였습니다. 전세계 각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기후소송과 그 전략을 함께 나누고, 기후소송을 가능케하는 시민의 힘과 변화를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혼자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 날 행사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행되었습니다. 오전 세션은 국내 법률 전문가분들께 네덜란드, 동아프리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소송과 그 전략을 소개하고 소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 소송을 수행하면서 경험한 힘든 점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에프예 데 크룬 그린피스 네덜란드 캠페이너는 네덜란드령인 카리브해 인근 보네르 섬 주민들과 함께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을 소개했습니다. 이 소송은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 적응과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보네르섬 주민의 생명권과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죠. 그는 기후정의의 실현은 곧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임을 강조하며 이 소송이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식민지 역사 속에서 축적된 구조적 불평등을 되짚고 보네르섬 주민들이 '모두가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 즉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권보호과 환경정의를 추구하는 아프리카 변호사 단체인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의 데일 파스칼 온얀고 변호사는 환경사회영향평가의 하자를 지적하여 케냐 라무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허가를 무효시켰던 소송전략과, 현재 진행 중인 우간다-탄자니아 원유송유관 건설 취소소송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기후소송을 진행하며 겪은 권력의 불균형과 시민이 배제된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지적하며 기후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소송의 제기와 더불어 시민이 주도하는 캠페인, 지역사회의 연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오전 행사의 마지막 연사인 국제 기후 법률 지원단(Global Climate Legal Defense, CliDef)의 찰리 홀트 변호사는 미국 에너지 기업 에너지트랜스퍼가 네덜란드 소재 그린피스 인터내셔널과 그린피스 미국사무소를 상대로 제기한 SLAPP(전략적 봉쇄 소송) 소송을 소개하며, “이는 단순히 하나의 소송이 아니며, 전 세계에서 시민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시위를 억압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계 각 지역의 반-SLAPP 법규 제정현황을 공유, 에너지트랜스퍼의 전략적 봉쇄시도에 대해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이 EU의 반-SLAPP 법규를 근거로 네덜란드 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오는 7월 네덜란드 법원에서 심리가 예정돼 있는 점도 안내했습니다.

우리는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가 될 것입니다.
오후 세션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아시아 지역의 시민 참여 기후 소송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첫번째 세션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한국과 대만의 헌법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플랜1.5 윤세종 변호사는 2024년 8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국내 첫 기후 소송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윤 변호사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하여 법의 부재로 세대간 정의가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체계가 기후변화의 영향과 온실가스 배출 제한의 측면에서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고 있음을 헌재가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만의 환경권리재단(Environmental Rights Foundation) 조이 황 변호사는 대만 기후법의 미진한 감축목표가 원주민, 농부와 어부, 어린이 및 다른 시민들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설명하며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앞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목표 설정에 반영하지 않은 것에 대한한 문제점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태풍 모라콧의 피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작년 1월 대만 사법부에 청원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두번째 세션은 정부가 아닌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아시아지역 소송에 대한 공유가 이어졌습니다. 일본 KIKO 네트워크의 미에 아사오카 변호사와 소송 원고인 코나츠 호리노우치는 일본 청년들이 석탄화력 중심의 발전회사를 피고로 제기한 기후 소송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한국과 달리 소송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가 드문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본 청년 16명이 일본 CO₂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주요 화력발전소 운영사 10곳을 상대로 탄소 감축 의무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된 이유와, 제소소 후 원고인단을 포함한 지역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세번째 세션에서는 버지니아 베노사 로린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필리핀 사무소 선임 기후 캠페이너와 바차산 섬 보홀 지역 주민이자 커뮤니티 리더인 트릭시 수마발 엘이 참석해 쉐브론, 쉘, 액손 등과 같은 탄소배출 대기업(‘카본메이저’)을 상대로 진행된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침해 또는 침해위협에 대한 인권조사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필리핀 인권위원회는 이들 기업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해당 기업들이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GP)’에 따라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또한 연사들은 위 조사과정에서 욜란다, 라이와 같은 슈퍼태풍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단순히 ‘희생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생존자’로서 기업과 정부에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주체로 나아갔다고 평가했습니다.

오후의 마지막 세션은 한국의 시민들이 기후위기의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국내 기후·에너지 정책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며 국내 대형 발전 사업에 대한 허가 결정이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기 전에 이루어져 기후 변화나 인근 지역 주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현행 에너지 사업 인허가 절차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며, 이러한 문제점의 개선을 위해서는 기후 소송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울타리, 기후소송
기후소송은 참 어려운 소송입니다. 위기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있지만 법률이 마련되지 않아 근거없는 주장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어렵게 승소를 한다해도 그것이 변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하루를 가득 채운 이번 워크숍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기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려운 싸움이 끝없이 이어져 왔고, 무관한 듯 보였던 그 모든 노력이 우리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후소송을 통해 세계 각 지역의 시민들이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성과를 내고,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상식과 법률, 판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이 어려운 시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린피스는 올해 시민의 힘을 모아 기후정의를 실현하고 새로운 기후 판례를 만들어가고자 기후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며 그린피스의 최신 국내 및 글로벌 캠페인 소식과 환경 이슈를 매주 그린피스 뉴스레터로 받아보세요!
# 워크숍 자료는 첨부 파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