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청송 산불 피해 현장 활동 - 불타버린 고향,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
산불이 집어삼킨 봄의 시작
4월입니다. 겨울을 버텨낸 나무 끝에 연두색 잎과 꽃봉오리가 움터야 할 시기죠. 그러나 청송군의 봄은 검게 타버린 나무와 무너진 집, 쓰러진 삶으로 시작되었습니다.

4월 2일, 그린피스는 산불 피해로 대부분의 주민이 집을 잃은 경북 청송군을 찾았습니다. 대피소에는 1평 남짓한 텐트가 바둑판처럼 가득 들어서 있었고, 대피소 인구의 대부분은 고령의 주민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의 현장을 기록하고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린피스는 시민 여러분의 후원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상으로 – 덕천리 마을

그린피스 기후재난대응팀은 대피소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덕천리 마을회관으로 배달했습니다. 가까스로 불을 피한 회관은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식사하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점심 도시락 배달에 맞춰 마을회관에 도착한 어르신들은 밭일을 하다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불로 밭과 논과 씨앗이 불타고 값비싼 농기구가 다 녹고 타버렸다는 하소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밭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었습니다.
불이 집어삼킨 집 – 지경리 이금자 할머니
다음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러 간 곳은 지경리였습니다. 마을회관 앞, 높게 게양된 태극기까지 불에 탄 모습이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매캐한 냄새는 한 시간 넘게 머물러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코와 목은 점점 따가워졌습니다.
이금자 할머니는 우리를 잿더미가 된 집터로 안내했습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었어. 증조할배가 지은 집인데…”

이금자 할머니는 지경리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불탄 집의 생존자였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뒷산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여기까지 불이 옮기려면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거대한 불덩이가 눈앞의 언덕으로 옮겨붙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아이고 우야노, 가슴이 펄떵펄떵 뛰고 눈물만 나와. 가족들 놀러 오던 집인데…”
집이 불타는 와중에도 이금자 할머니는 물이 나오는 호스로 마루와 벽, 지붕, 서까래에 물을 뿌려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전기선에 불이 튀어 큰불이 나고 얼굴에 뜨거운 불바람이 덮치자 이금자 할머니는 아픈 허리도 잊은 채 마루에서 먼 곳으로 한숨에 내리뛸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피소의 하루 - 돌아갈 집을 잃은 사람들
그린피스가 만난 모든 사람은 ‘생존자’였습니다. 대피소 내부를 찬찬히 걷던 남소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 젊었을 적 별명이 장군이었어. 장군처럼 튼튼하다고. 아직 참깨 두 가마는 혼자 짓지.”
강건하며 호쾌해 보이던 남소인 할아버지는 집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사람이 밀릴 정도로 뜨거운 바람이 불어 겨우 기어가며 불타는 집에서 도망쳐나왔다고 하셨습니다.
“전쟁보다 더해. 불천지야. 폭탄 터지듯이 여러 군데서 펑펑 소리가 났어. (⋯) 아낀다고 못 먹은 맛있는 음식이나 김치가 생각나. 다 타서 아까워. (⋯) 고양이 두 마리는 없어졌고, 키우던 강아지는 한 마리만 살았어.”
기후재난은 집만 앗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중한 기억과 추억까지 집어삼켜 절망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참깨 파종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농기구도, 씨앗도 모두 불에 탔지만 5월에 참깨를 파종하기 위해 4월인 지금부터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이죠.
새벽부터 불을 밝힌 대피소 앞
새벽 4시, 기온은 0도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손발의 끝이 얼얼했지만 그린피스 기후재난대응팀은 분주히 아침 도시락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찬물에 나물을 헹구고, 밥솥을 돌리고, 200인분이 넘는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해 익숙한 집이 아닌 마을 회관에서 눈을 뜨며 아침을 맞으셨을 어르신들께 보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아침 도시락 준비와 배달을 끝내도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형 밥솥과 조리도구를 설거지하는 기후재난대응팀 앞에 바로 점심 배식을 준비하기 위해 생선 손질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기후재난에 맞서는 그린피스의 역할
청송에서 그린피스 기후재난대응팀은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이재민의 피해를 기록하고, 도시락 배달, 아침 배식 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린피스는 현장 활동뿐만 아니라,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김형준 교수팀과 함께 산업화 이전과 현재(2000∼2014년)의 ‘산불 위험 지수’(FWI)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신문 및 방송 보도를 이끌어냈습니다.
산불 상황을 염려해 주신 후원자분들의 후원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기후재난 시민대응단과 함께 산불 이재민분들의 일상 회복과 심리 안정을 위한 활동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시민대응단원들은 산불 피해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그 상실과 아픔을 가깝게 마주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은 피해가 한 지역의 일이 아니라, 기후재난 시대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보여줍니다.
기후재난에 대한 기후위기 영향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한국의 기후재난 대응 정책은 기후재난의 피해를 키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기적인 회복 지원이 부재한 현실은 피해 지역 이재민들의 일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린피스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팀은 시민대응단과 함께 이재민들의 장기적인 회복을 위한 활동과 함께,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난 대응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
청송에서 우리는 ‘시민이 시민을 일으키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