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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에서 서울까지] 기후소송 승리의 여정

아시아 첫 기후소송 : 기후위기 대응의 전환점

글: 채혜진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리걸 코디네이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기후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열어 강력한 행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제 정부와 국회, 기업이 시민의 뜻을 받아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판결은 끝이 아니라, 기후 대응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용기

기후위기의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애쓰거나 채식을 시도하는 것은 유난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가방 속 텀블러의 무게를 더한 폭염과 혹한 앞에서 이게 맞나, 의구심이 들게 하죠.

대한민국의 어린이가, 청소년이, 또는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어른이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흡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일은 어땠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부모님이 시켜서 나왔다는 비아냥부터 기업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는 핑계, 심지어 기후위기는 실체가 없다는 무지성의 주장까지 대면해야 하는 지난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세계 법원의 판결을 이끌어온 시민의 힘

서울에서 직선거리 8,611 KM,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2019년 세계 최초로 기후위기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미흡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한 것은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한없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무기력함에 지지 않으려 애쓰던 많은 이들은 이 판결이 한국 정부에도 가 닿아 우리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반영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파리 기후협정에서 합의한 감축목표(1.5도 상승제한)에 미치치 못하는 실망스러운 목표였습니다. 또한 감축의 기준이 되는 해의 배출량은 총 배출량으로, 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해의 배출량은 순배출량(총배출량에서 산림 등을 통해 흡수된 온실가스의 양이나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탄소포집 및 저장-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해낸 양을 뺀 값)으로 정하여 실질적인 감축인 아닌 숫자 부풀리기에 치중하기도 했죠.

최종 판결을 앞두고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기후헌법소원 공동원고인단  (사진: 기후헌법소원 공동원고인단 제공)
최종 판결을 앞두고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기후헌법소원 공동원고인단 (사진: 기후헌법소원 공동원고인단 제공)

이에 2020년 국내 최초의 청소년기후소송, 2021년의 시민기후소송, 2022년 아기기후소송, 2023년 기후소송까지 대한민국 정부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총 4개의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제기된 한국의 기후소송은 청구 후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변론기일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청구인들은 기본권 침해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청원을 제기하고, 변론의 기회라도 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여러번 제청을 해야 했습니다.

그 사이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연방기후보호법의 감축목표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독일청년들의 청구에 “입법부가 현재와 미래 세대 사이에 탄소예산을 비례적으로 분배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2021년)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안정적 기후’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관한 권리에 포함된다며 “몬태나주가 환경정책법에서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허가할 때 기후 영향을 고려하지 않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2023년)

그리고 2024년 8월 29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8,611KM 떨어진 이곳 대한민국 서울에서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한국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은 ‘위헌’

청년들이  정부에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예산을 반영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청년들이 정부에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예산을 반영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현행 기후정책이 파리협정의 목표(1.5도 상승제한)를 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이는 국민의 생명권과 환경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따른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가 기본권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2031-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은 미래 세대의 헌법적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과소보호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또한, 위헌판결을 위해 요구되는 헌법재판관 6인의 정족수에 달하지는 못하였지만 과반이 넘는 5명의 재판관이 정부의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 목표 중 ‘부문별 감축목표’와 ‘연도별 감축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에 충분치 않아 위헌이라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기후위기가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인정한 아시아 최초의 판례입니다. 아쉽게도 당장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은 수정이 어렵겠지만 내년(2025년) 2월 정부가 UNFCCC에 제출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정부의 기후목표 진전 의지를 평가하는 가늠자가 될 것입니다.

끝이 아닌 시작

올해 초 정치권은 그린피스와 청년, 그리고 1만명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탄소예산을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 정책 추진을 약속하며 이에 맞춰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겠단 포부를 밝혔습니다. 시민들이 이끌어온 헌재 판결에 힘입어 이제 입법부와 행정부가 제 몫을 다해 스스로의 약속을 이행해야 할 차례입니다.

기업의 투명한 기후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기후공시 캠페인 기자회견
기업의 투명한 기후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기후공시 캠페인 기자회견

또한 공정한 탄소예산 배분을 위해서라면 전력 및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가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선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업의 재생에너지로 전력 전환 뿐만 아니라 기업의 기후위기대응 활동을 사업의 재무정보처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기후공시제도의 입법화도 매우 필요합니다.

저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이번 판결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변화를 이끌어내고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캠페인을 지속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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