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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공시 의무화 헌법소원이 각하된 이유

글: 채혜진 그린피스 리걸 코디네이터
ESG공시 의무화는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첫 걸음입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67명의 시민과 함께한 기후공시 의무화 헌법소원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부의 기후위기 책임을 인정하는 글로벌 기후 소송

2023년 8월 14일, 미국에서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이 “주 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 깨끗한 환경에서 살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몬태나주 청소년 16명이 2020년 3월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몬태나주 법원의 캐시 실리 판사는 103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에서 ‘안정적 기후’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관한 권리에 포함된다며 몬태나주가 환경정책법에서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허가할 때 기후 영향을 고려하지 않도록 한 것은 위헌임을 명시하였습니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이 청소년 16명이 2020년 3월 제기한 기후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이 청소년 16명이 2020년 3월 제기한 기후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 출처 AFP연합뉴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백히 한 2015년의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을 시작으로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기후변화대응법의 미진한 목표에 대해 위헌을 선언하였고, 이러한 변화는 2023년 미국 몬태나주 판결로 이어졌습니다. 해외 법원들은 국가에게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 책임이 있음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기후공시 의무화 헌법소원, 한국은 어떨까요?

반면 기후소송에 대한 해외의 선례가 쌓여가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적으로 위헌의견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아기기후소송, 청소년기후소송 등 국내에서 제기된 기후 관련 헌법소원에 대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거운 침묵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11월 7일, 무려 167명의 시민이 청구인단으로 참여한 그린피스의 기후공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청구기간 도과로 인한 각하'라는 답을 돌려주었습니다.

낯선 단어가 많으니 찬찬히 풀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의 청구기간은 (짧게 요약하자면) “법이 시행된 날로부터 1년” 또는 “기본권 침해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안 날로부터 90일”입니다. 이 기간이 지난 후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령이 실제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청구기간 도과”를 사유로 소송을 종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각하”입니다.

기후공시 헌법소원의 167명 청구인단이 준수했어야 할 청구기간은 과연 언제까지였을까요?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여러분의 생각이 같을지 궁금합니다.

그린피스가 발간한 [그린워싱 실태 시민 조사보고서]와 기후공시 캠페인을 통해 많은 시민이 기업에게 투명한 기후정보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 한국의 공시제도, 자본시장법 제159조가 기업의 그린워싱을 방조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활동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합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사업을 이어가면서도 푸른 하늘, 녹색 이미지로 점철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며 손쉽게 자신들을 친환경 기업으로 포장해 왔습니다. 그린피스는 기후 관련 정보를 누락하거나 허위 기재해도 어떠한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 자본시장법의 허점 때문에 유해한 기업활동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한민국 국민의 환경권, 나아가 (주주인 경우) 주주로서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2023년 8월 기후공시 헌법소원 캠페인을 전개하며 시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9월 기후공시 헌법소원에 소송인단으로 참가한 시민들과 조형물 퍼포먼스 모습
2023년 9월 기후공시 헌법소원에 소송인단으로 참가한 시민들과 조형물 퍼포먼스 모습

그렇다면 167명의 청구인들은 공시제도의 근거 법률인 자본시장법 159조가 환경권을 포함한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언제 알 수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까요? 기후문제가 심화되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후공시 제도의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 왔음에도 대한민국의 공시제도는 기업에게 기후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 “침해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안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7년으로 돌아가라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판단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기준은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법 시행일로부터 1년”이 지났으므로 헌법소원 각하라는 기계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청구인단 167명이 자본시장법 제159조가 개정, 시행된 2016년 6월 30일로부터 1년 이내, 즉 2017년 6월 30일까지 헌법소원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린워싱” “탄소예산” 같은 개념조차 낯설었던 2017년에 청구인들이 공시제도의 미비로 자신들의 환경권이 침해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기후공시 헌법소원 청구인단 167명 중에는 6명의 청소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상한 마음으로 직관적인 비교를 해보자면, 미국 몬태나주의 청소년들이 미래의 환경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받은 2023년, 한국의 청소년 6명은 공시제도의 근거 법률인 자본시장법 159조가 자신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재학 중인 2017년에 미리 알았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6년 전인 2017년에는 알지 못했어도, 2023년의 우리는 기업의 활동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텀블러를 들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채식을 하고 장바구니를 들어도 기업이 변화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에게 투명한 기후정보의 공개와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법을 통해 해야할 몫입니다.

2023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석유 기업들을 비롯한 주요 '오염원들'인 기업에게 제품 공급 및 사용과 관련된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킴과 동시에 엑손모빌, 쉘, BP, 코노필립스, 쉐브론, API 등의 석유재벌을 상대로 '화석연료 의존의 위험성에 대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사실을 은폐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투명한 기후공시 제도를 통해 기업이 변화하도록 유도하고 기업이 사업 활동에 따른 기후변화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움직임입니다.

 2023년 7월 그린피스가 공동주최한 기업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공시 토론회
2023년 7월 그린피스가 공동주최한 기업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공시 토론회

한국의 행정부가 기업의 편의만을 고려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기에 그린피스와 167명의 기후공시 헌법소원 청구인단은 헌법에 기초한 권리로서 미비한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온당한 판단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에게 2017년으로 타임머신을 탈 것을 요구하는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6명의 청소년을 포함한 167명의 청구인단은 헌법재판소의 미흡한 기후 인식과 그에 기반한 각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투명한 기후정보 공개를 위한 그린피스의 다음 활동

그린피스는 이제 기후공시 헌법소송 청구인단의 뜻을 이어, 기업이 의무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전략과 성과를 공개하도록 만들기 위한 법안 개정 활동을 시작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입법한 것처럼 말이죠. 기후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법률상 제도화하여 환경에 대한 책임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강화시키고 기업의 야심찬 기후 대응 목표가 효과적으로 구현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기업에 대한 그린피스의 기후 정보 공개 요구 활동에 많은 관심도 지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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