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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앵커볼트, 위험에 빠진 원전

글: 이선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최근 뉴스에서 일부 신축 아파트들의 심각한 안전문제가 불거지며 ‘순살 아파트’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부실 시공을 지적하는 표현인데요. 아파트 만큼 흔히 볼수도 없고, 거주할 수도 없는 곳이지만 부실 시공이 절대로 용납되어선 안되는 시설이 있습니다. 바로 원전입니다.

원전의 철저한 안전 점검은 설계부터 시작이 됩니다. 설계 기준을 준수한 설계 도면을 도출한 뒤 설계 도면대로 시공을 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린피스는 원전이 설계 도면대로 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적합 앵커볼트(Anchor bolt)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앵커볼트는 기계, 설비와 같은 구조물을 건물에 고정시키는 장치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 앵커볼트는 원전 내 거의 모든 설비에 장착되어 있는 주요 안전 부품입니다.

공익 제보로만 알려지는 원전 안전의 비밀

작년 그린피스가 폭로한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수조와 폐수지저장탱크에서의 방사성 물질 누설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번 앵커볼트 문제도 전과 같이 ‘익명의 제보’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오늘(11월 30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원전 안전 분야 재직자로 밝힌 익명의 제보자가 원전 설계기준 미달 앵커볼트 문제와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린피스가 공개된 자료를 검토, 분석한 결과, 노후원전인 월성원전을 포함해 국내 원전 14기(고리 3,4호기, 한울 1~4호기, 한빛 1~4호기, 월성 2~4호기)에서 내진 설계가 반영되지 않거나 설계기준과 다른 부적합한 앵커볼트가 격납건물과 같은 안전등급(Safety Class) 설비와 구조물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구조물과 콘크리트를 고착될 수 있게 설치돼 있는 앵커볼트의 모습  (출처 : Shutterstock )
구조물과 콘크리트를 고착될 수 있게 설치돼 있는 앵커볼트의 모습 (출처 : Shutterstock )

부적합한 앵커볼트의 문제점,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나다.

제보된 앵커볼트는 총 2가지 문제로 ①월성원전 1~4호기의 격납건물에 비내진 앵커볼트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과 ② 가동원전 13기의 격납건물 및 보조 건물에 설계 기준에 못 미치는 부적합 앵커볼트가 시공되어 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문제가 제기된 격납건물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기기 및 부품은 원전의 안전성과 건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Q등급의 품질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월성 3호기 격납건물의 총 353개 기기 중 279개를 실측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NSQ 등급, 즉 비내진 등급으로 장치된 앵커볼트 갯수는 약 1천 3백개에 달합니다. 월성원전은 동일한 설계로 시공됐기 때문에 나머지 월성 1, 2, 4호기 격납건물도 유사한 상황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럼 4개 격납건물에 최소 4천개의 비내진 설계가 설치된 것입니다.

현재 비내진 앵커볼트가 시공된 위치가 격납건물 압력경계(바닥, 벽체, 돔)이고, 시공 갯수가 1천개가 넘기 때문에 격납건물에 대규모 균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비내진 앵커볼트가 시공된 기기들이 손상되어 원자로를 안정정지하지 못 하거나, 이로 인한 원자로의 과열 및 과압으로 1차 냉각재 배관이 파열되는 냉각재손실사고(LOCA, Loss of Coolant Accident)가 발생하면 격납건물의 균열을 통해 경주, 울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으로 방사능 수증기가 누출되는 원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내 가동원전 13기의 안전 관련 기기에 들어가는 전체 앵커볼트 약 1만 2천여개 중 설계도면에서 요구하는 앵커 길이를 만족하지 못하는 앵커볼트가 약 1천개가 넘습니다. 이는 설계 기준 미달에 해당하는 부적합 사항입니다.

가동원전 13기의 안전 관련 기기는 모두 법적 기준에 따라 내진 검증이 완료되고, 설계도면이 요구한 앵커볼트 재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질이 확인되지 않은 앵커만 약 3천 3백개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안전 관련 기기는 하중이 큰 것이기 때문에 고강도(A449, A325)를 위주로 사용하는데 반해, 저강도 앵커볼트(A307, A36) 약 7천 74개가 시공됐습니다. 이는 재질과 운전가능성을 평가한 최종 자료를 사업자 한수원에게 수령해 확인하여 부적합 앵커 재질이 확인됐는지 엄중히 확인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지난 11월 30일 새벽 4시 55분 경 월성 원전 10km 거리에서 규모 4.0 지진이 발생했다. 사진은 그린피스가 지난 2021년 촬영한 경주 월성 원전 1~4호기의 모습이다.
지난 11월 30일 새벽 4시 55분 경 월성 원전 10km 거리에서 규모 4.0 지진이 발생했다. 사진은 그린피스가 지난 2021년 촬영한 경주 월성 원전 1~4호기의 모습이다.

부적합 앵커볼트는 명백한 법 위반이다.

사업자인 한수원과 규제기관인 원안위는 해당 사실을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제보된 자료는 2017년부터 작성됐고, 제보자는 2015년부터 관련 기관에 보고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알고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원자력안전법 위반 사항입니다.

원안위는 원자력안전법 제98조에 따라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고, 한수원에게 부적합 사항을 보고 및 외부 공개하게 해야합니다. 또한, 원자력안전법 제24조에 따른 운영허가 취소 또는 정지 처분이 필요한 사안인지 판단하고 조치해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전 독점 사업자와 규제기관이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의 노후원전 격납건물에 내진 능력 없는 약 4천개의 앵커볼트가 박혀있어도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다면 관련자와 책임자에겐 원전의 안전을 훼손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원자력안전법 내 앵커볼트 해석]

  1. 앵커볼트는 원자력안전법의 기술기준 규칙 제2조 제5호에 해당하는 ‘안전에 중요한 구조물·계통 및 기기’에 해당하는 중요 부품입니다.
  2. 원자력안전법 제12조 표준설계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비내진 및 부적합 앵커볼트가 설치된 경수로(고리 3,4호기, 한울 1~4호기, 한빛 1~4호기) 및 중수로 원전(월성 원전 1~4호기)의 내진설계 기준이 되는 안전정지지진은 0.2g입니다.
  3. 원자력안전법 제21조에 의한 운영허가 기준 미달 시 제22조에 의하여 시정을 명할 수 있고, 제24조 제1항에 의해 허가 취소 또는 운영 정지 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에 매설되어 있는 앵커볼트는 비파괴 검사를 통해 길이 측정을 할 수 있다. (출처 : Shutterstock)
콘크리트에 매설되어 있는 앵커볼트는 비파괴 검사를 통해 길이 측정을 할 수 있다. (출처 : Shutterstock)

한수원과 원안위가 숨기고 싶은 진실은?

지난 9월 운영허가 승인을 받아 시운전을 하고 있는 신한울 2호기는 허가 기술기준에 맞지 않은 앵커볼트가 설치돼 있어 운영허가가 지연되었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기기는 냉각수로 쓰이는 바닷물에 이물질을 제거하는 회전여과망으로, 해당 기기에 부착되는 앵커볼트는 미국 콘크리트학회(ACI) 기준을 따라야 하는데 다른 기준을 적용해 원안위가 한수원에게 시정을 요구했었습니다. Q등급의 앵커볼트가 필수도 들어가지 않는 기기임에도 운영허가 지연 되었다는 점은 운영허가 기준에 합당한 앵커볼트 설치가 법적으로 얼마나 위중한 사안인지 보여줍니다.

문제는 앵커볼트 교체 또는 보강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란 점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미 시공된 앵커볼트를 교체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 있습니다. 콘크리트를 파내 앵커볼트를 분리하거나 부적합 앵커볼트 옆에 설계 기준에 맞는 앵커볼트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가동 중인 원전 격납건물의 앵커볼트를 교체하기 위해 콘크리트 일부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격납건물 돔에 위치한 앵커볼트는 고소지역에 해당해 점검도 쉽지 않은 부품입니다. 철근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는 원전에 앵커볼트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올해 1월 발표된 행정안전부의 한반도 동남권 활성단층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고리와 월성 원전 32km 반경 이내 총 7개의 활성단층이 확인됐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부산대 손문 교수는 제4기 단층들의 최대 지진 규모는 6.5~7.0 사이로 해석된다고 밝혔는데요, 진도 6 이상 의 강진이 발생할 경우 부실한 건물은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노후 원전인 고리와 월성의 안전 문제가 사고로 이어지기 전 안전을 위한 조치가 긴급히 취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린피스 스페인 사무소가 원전 위험성을 알리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그린피스 스페인 사무소가 원전 위험성을 알리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원전 인근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의 막대한 피해와 함께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경험하지 못한 국가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원전에 미래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원전 안전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습니다.
그린피스는 원전 안전을 위해 거대한 원자력 산업계의 안전 불감증을 밝히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굳은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린피스와 원전 말고 안전에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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