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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범 항해사의 남극 항해기(4) - 바다의 심장, 남극해···너만은 기후위기의 아픔 겪지 않기를

글: 류한범 항해사

이 글은 그린피스 류한범 이등항해사가 경향신문에 연속 기고한 <류한범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의 전문입니다.

남극은 ‘펭귄의 땅’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남극의 얼음은 지구 온난화로 녹아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얼음이 녹고 있는 남극도 여전히 ‘펭귄의 땅’일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류한범 항해사는 지난 6일 쇄빙선을 타고 남극으로 향했다. 남극에서 펭귄 개체 수, 취약한 해양 생태계를 조사할 예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없는 곳, 남극에서 전하는 류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는 총 4회 시리즈로 연재된다.

④바다의 심장, 남극해

“남극 빙하를 각 나라의 앞바다까지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대한 밧줄을 묶어 끌고 가는 건 어때?” “빙하에 돛을 달아 항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미는 방향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서는 빙하의 무게 중심을 먼저 파악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조타실에 모인 세계 각국,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창문 밖 빙하를 보며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유인즉슨 이렇게 아름다운 빙하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려 해도 현장에서 전해지는 느낌과 감동을 다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었고, 이 벅찬 감동을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이제까지 모든 현상을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하던 잠수함 통신 기술자, 제프 아저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은 이럴 때 시를 쓰는 게 아닐까?”라고 운을 띄운 제프는 다정한 목소리로 빙하에 대한 자작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영어로 된 짧은 시를 듣고 있자니 제 마음에 뭉클한 울림이 일었습니다. 특히나 ‘그 빙하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바다로 녹아들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꽤 오랜 여운을 남겼습니다. 제프는 샤워할 때 조금씩 생각했다며 수줍은 듯 시 낭송을 마쳤습니다

제프의 시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빙하를 통과하기를 며칠, 드디어 그린피스 아틱선라이즈호는 다시 한 번 웨델해(Weddell Sea)에 도착했습니다. 항해를 계획했던 서쪽 반도의 날씨가 좋지 않아 웨델해로 다시 왔지만, 이번에는 갈 수 있는 최대한 남쪽으로 항해해보기로 했습니다. 수 많은 얼음을 뚫고 때론 부숴가며 계속 남쪽으로 전진하던 아틱선라이즈호는 남경 65도에 이르러 거대한 빙하들을 만났습니다. 길이 막힌 우리는 이곳에서 잠수함을 진수하기로 했습니다.

갑판에 싣고 온 빨간색 잠수함은 두 사람이 조종석에 앉으면 꽉 차버리는 소형 잠수함입니다. 해저로 내려간 잠수함과의 위치 추적 및 통신 시스템을 긴밀히 유지하기 위해, 본선의 항해사인 저는 잠수함 조종사와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 넓은 바다에서 잠수함의 위치를 놓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기 때문이죠. 아마도 우리 잠수함의 색깔이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인 이유도 최악의 상황에서 잠수함을 빠르게 식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심해 탐사를 위해 우리는 여러 차례 잠수함 진수 훈련을 했습니다. 기술자들이 최종 점검을 끝낸 뒤 잠수함 조종사가 조종석에 탑승해 모든 장비를 다시 한 번 확인하자, 드디어 남극에서의 잠수함 진수가 시작됐습니다. 잠수함이 영하 2도의 차가운 남극 바다를 들어가 400m 물길 속으로 내려가는 동안, 저를 포함한 항해사들은 잠수함의 위치를 계속해서 추적하기 위해 한 손엔 선박을 앞뒤로 움직이는 엔진 조종 장치를, 다른 한 손엔 좌우를 조절하는 조타기를 잡고 바쁘게 조종을 이어갔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간 잠수함은 3시간이 넘도록 잠수를 하며 해저 생태계를 조사합니다. 잠수함의 배터리가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때쯤, 잠수함 조종사와의 음파 통신을 통해 다시 수면으로 올라간다는 내용을 주고받습니다. 잠수함이 수면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 우리 배는 천천히 잠수함 쪽으로 접근합니다. 선원 중 한 명이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어 잠수함에 크레인을 걸고 나면 잠수함은 무사히 갑판 위로 올라옵니다.

돔 형태로 생긴 잠수함 문이 열리자 추위에 떨고 있는 잠수함 조종사들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조종사들을 선실 안으로 이동시키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었습니다. 소형 잠수함에서는 산소탱크가 매우 중요하기에, 어떠한 난방 시설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남극에는 9000종이 넘는 종류의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해양 생물의 4분의 3이 깊은 바다에서 올라온 풍부한 영양분이 포함된 바닷물에 의해 살아가는데, 남극 바다는‘풍부한 바다 영양소’를 전 세계로 퍼트리는 데 있어 바다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잠수함 조종사를 비롯한 전 선원들은 이러한 남극 바다의 중요성을 알기에, 추위와 날씨, 고립 위험 등의 극한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해양 생태계 조사에 힘을 쏟는 선원들은 반드시 남극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하나의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죠. 그렇게 첫 번째 잠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매일 남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휴일 없이 약 2주에 걸친 해저 생태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연구실로 돌아가 남극 해저 생태계가 얼마나 다양한지, 또 이 생태계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계속 연구할 예정입니다.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남극 바다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데 한 발 더 다가가도록 도울 것이고, 나아가 2030년까지 세계 바다의 30%를 보호하는 강력한 세계 해양 조약을 채택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느덧 남극의 계절은 여름이 끝나고 점점 겨울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6일부터 남극 항해를 시작한 그린피스 쇄빙선 아틱선라이즈호는 계획된 남극 탐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아르헨티나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배에 오른 모든 선원이 한 마음으로 불철주야 전력을 기울였고, 의미 있는 결과로 탐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적어도 남극의 바다만큼은 인간의 파괴 행위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저는 스스로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바다를 지키는 항해를 계속합니다.

남극 보호를 위해 응원하기

류한범 그린피스 항해사. 2017년부터 그린피스 이등항해사로 활동하고 있다. 북극해, 대서양, 카리브해 등을 항해했으며 남극 항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구가 더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피스 항해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