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소식

Greenpeace Korea | 그린피스

참여하기

최신소식 해양
5분

류한범 항해사의 남극 항해기(3) - 펭귄들의 마지막 피난처, 웨델해

글: 류한범 항해사

이 글은 그린피스 류한범 이등항해사가 경향신문에 연속 기고한 <류한범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의 전문입니다.

남극은 ‘펭귄의 땅’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남극의 얼음은 지구 온난화로 녹아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얼음이 녹고 있는 남극도 여전히 ‘펭귄의 땅’일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류한범 항해사는 지난 6일 쇄빙선을 타고 남극으로 향했다. 남극에서 펭귄 개체 수, 취약한 해양 생태계를 조사할 예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없는 곳, 남극에서 전하는 류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는 총 4회 시리즈로 연재된다.

③펭귄들의 마지막 피난처, 웨델해

육지와 달리 배 위에서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당직을 서며 일하는 탓에 요일 감각도 사라집니다. 껍질이 말라 시들어진 사과를 베어 물었을 때, 그제서야 항구를 떠난 지 벌써 3주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닫습니다.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 연구진들과 함께 펭귄 생태계를 조사 중인 그린피스는 드넓은 웨델해(Weddell Sea)와 브랜스필드 해협(Bransfield strait)의 크고 작은 섬들을 돌아다니며 펭귄 개체 수와 둥지 수를 세어왔습니다.

드디어 탐사 계획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세이무어 섬(Seymour island)으로 출발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이 섬으로 가는 길은 항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거의 없는 미지의 구간입니다. 자동차 주행과 비교하자면, 어두운 저녁에 도로가 없는 오프로드 땅을 달리는 것과 비슷하죠. 게다가 바닷길에는 피해가야 할 얼음이 빼곡합니다. 우리는 바닷길의 깊이를 파악하기 위해 부속선을 띄웠고, 부속선의 안내에 따라 항해를 계속한 끝에 세이 무어 섬에 이르렀습니다.

남극 섬에 상륙하기 위해선 섬의 가장 완만한 경사로를 찾아 접근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완만한 경사로는 남극 동물들도 애용하는 상륙 지점이라는 점이죠. 괜찮은 지점을 찾아 접근을 시도하면, 저 멀리서 바위처럼 보였던 한 무리의 바다표범들이 고개를 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칩니다. 바다표범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상륙지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힘겹게 상륙을 마친 후 드디어 펭귄 개체 수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아틱선라이즈호의 뱃고동 소리가 3번 울려 퍼졌습니다. “지금 당장 배로 돌아오라”는 본선의 신호입니다. 부랴부랴 뿔뿔이 흩어진 과학자들을 다시 부속선으로 불러 모으는 사이 사방은 이미 짙은 안개로 뒤덮였습니다. 잠시 후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오로지 나침반과 GPS에 의존해 얼음 가득한 바다를 뚫고 본선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다시 항해에 오른 저희는 마침내 목표한 펭귄 개체 수 조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세이 무어 섬에서 관찰된 아기 펭귄 수는 총 2만1500마리로, 10년 전인 2012년 조사 당시 수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데빌 섬(Devil island)과 볼텍스 섬(Vortex island)에서도 2008년~ 2010년 사이에 조사된 펭귄 개체 수와 2022년 개체 수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수 년간 펭귄 생태계를 조사해 온 펭귄 과학자들은 다음과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남극반도 서쪽은 기후변화로 온도가 많이 높아짐에 따라 아델리펭귄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웨델해가 접해 있는 이번 조사지역인 남극반도 동쪽은 차가운 해류 등으로 기온 상승의 영향이 덜한 지역으로, 아직까지 아델리펭귄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결국 웨델해 지역은 펭귄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펭귄들의 부화 시기가 끝나 바다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3주에 걸쳐 진행된 펭귄 개체 수 연구 조사도 막을 내렸습니다. 과학자들은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이번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계속할 것입니다.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10년 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에서는 웨델해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처음 제안했고, 지난해 10월 회의에서도 이 안건을 논의했지만 결국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남극 생태계는 파괴적 어업 등으로 위협받아왔죠. 올해 3월이면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에서 해양생물다양성보전(BBNJ) 협약 4차 정부 간 회의가 열립니다. 남극을 항해하는 저 역시 이번에는 부디 바다를 지키는 의미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과학자들이 연구에 온 힘을 다하는 동안 캠페인 팀에서는 남극 바다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여러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함께 승선한 영국 가수 노보 아모르의 랜선 콘서트, 영국 런던에서의 남극 생중계 등을 통해 3월에 있을 회의의 중요성을 알렸죠. 저 역시 이번 유엔 회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김섬균 기관사와 함께 해양보호구역 지정의 적극적 의사결정을 촉구하는 배너를 들었습니다.

1차 탐사 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 배는 다시 한번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으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기상이 나쁜 드레이크 해협을 이미 한 번 겪어본 선원들이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배의 움직임으로 인해 굴러다니거나 부서지는 물건은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이틀간의 극심한 뱃멀미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다시 도착한 우수아이아에서 한 달 가량 동고동락한 1차 연구팀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승선과 하선, 만남과 이별이 잦은 뱃사람들은 ‘잘 가’라는 말 대신 ‘다시 보자’라는 말을 주로 합니다. 세상 어디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선원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다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아틱선라이즈호는 2차 남극 탐사의 마지막 준비를 위해 칠레 푼타아레나스항에 도착했습니다. 선원들이 다음 출항을 위해 분주히 준비하는 사이, 2차 탐사를 위해 새로운 캠페이너와 사진기자, 과학자, 잠수함 조종사 등이 부푼 마음을 안고 승선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엔 남극반도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해양 캠페인 함께하기

 


류한범 그린피스 항해사. 2017년부터 그린피스 이등항해사로 활동하고 있다. 북극해, 대서양, 카리브해 등을 항해했으며 남극 항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구가 더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피스 항해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