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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범 항해사의 남극 항해기(2) - 펭귄의 터전,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글: 류한범 항해사
이 글은 그린피스 류한범 이등항해사가 경향신문에 연속 기고한 <류한범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의 전문입니다.

남극은 ‘펭귄의 땅’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날로 심각해지고, 남극의 얼음은 지구 온난화로 녹아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얼음이 녹고 있는 남극도 여전히 ‘펭귄의 땅’일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류한범 항해사는 지난 6일 쇄빙선을 타고 남극으로 향했다. 남극에서 펭귄 개체 수, 취약한 해양 생태계를 조사할 예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없는 곳, 남극에서 전하는 류 항해사의 ‘조금 특별한 남극 항해’는 총 4회 시리즈로 연재된다.

②펭귄의 터전,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자욱한 안개가 깔린 새벽, 남서풍을 타고 온 고약한 냄새가 점점 더 강하게 제 코를 자극합니다. 사람은 냄새로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하는데, 이 냄새는 제가 키우는 고양이 ‘키로’가 밥을 먹은 후 볼일을 봤을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냄새는 우리가 남극대륙에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거친 파도를 뚫고 여기저기 떠다니는 수많은 빙하 조각을 피해 우리는 드디어 남극 웨델해(Weddell sea)에 있는 ‘안데르손 섬(Andersson island)’에 닻을 내렸습니다.

남극 도착을 알리는 냄새의 출처는 다름아닌 펭귄의 똥입니다. 처음 남극 땅을 밟기 전, 저는 남극을 눈으로 뒤덮힌 순백무결한 땅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남극은 펭귄 똥으로 가득 뒤덮인 ‘붉은 땅’이었습니다.

펭귄의 똥이 붉은 이유는 펭귄이 섭취하는 식량 때문입니다. 남극에서는 펭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들이 크릴(Krill)을 먹습니다. ‘난바다 곤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붉은색 무척추동물은 새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크릴새우’로도 불리죠. 1~2㎝의 손가락 마디만한 작은 크릴은 남극 동물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식, ‘남극의 쌀’입니다.

바다와 육지, 빙하를 자유롭게 오가는 펭귄들은 이렇게 크릴을 먹고 그들이 머무는 곳마다 붉은 똥을 뿌려 놓습니다. 그 똥으로 인해 색깔마저 붉게 변해버린 남극 섬만 보아도 펭귄들이 얼마나 많은 크릴새우를 섭취하는지 짐작할 수 있죠.

새벽 당직을 서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한국에서 봤던 홈쇼핑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사람이 먹을 영양제로 크릴오일을 파는 광고였죠. 펭귄을 비롯한 남극 동물들의 중요한 식량원인 크릴을 남획하고 가공하여 홈쇼핑에서 팔기까지, 인간은 남극의 생태계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 걸까요?

지구의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 남극을 파괴하는 인간의 활동은 비단 크릴새우의 남획 뿐만이 아닙니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석유 유출, 플라스틱 오염, 유람선을 타고 와 남극을 헤집어 놓는 수많은 관광객들까지, 인간의 위협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당직이 끝나고 날이 밝자, 과학자들과 선원들은 각종 장비를 챙겨 부속선에 올라탔습니다. 부속선은 8명 정도의 인원을 태울 수 있는 작은 배로, 남극의 작은 섬으로 이동하고 상륙할 때 사용합니다. 섬에 오른 우리는 본격적으로 2022년 첫 펭귄 생태계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첫 번째 도착한 섬에서 펭귄 서식지를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만큼은, 이등항해사인 저를 포함한 선원들 모두 본업에서 벗어나 과학자를 돕는 서포터가 됩니다. 가파른 산에 올라가 펭귄 둥지 갯수를 일일이 세는 것부터 드론을 띄워 섬 전체의 펭귄 서식지를 파악하는 것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역할들을 수행합니다.

조사를 마친 뒤 저는 과학자 리더인 마이클에게 조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온화한 젠투 펭귄이 새끼를 성공적으로 키울 수 없는 곳으로 알려진 남극반도. 이전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젠투 펭귄 둥지는 단 하나뿐이었지만 이번 조사에서 그린피스는 75개에 달하는 젠투 펭귄의 둥지를 발견했습니다. 남극이 따뜻해지면서 젠투 펭귄이 점점 더 남쪽으로 그들의 서식지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젠투펭귄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유명 다큐멘터리 티비 쇼를 보는 것처럼 즐겁지만, 연구 결과를 듣고나니 마냥 펭귄이 귀엽다고 좋아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도, 2도 오를 때마다 펭귄들의 삶의 터전은 남경으로 1도, 2도 더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동하다가 펭귄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게 된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항해가 주특기인 제게 과학조사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가 지속되는 맹추위, 눈과 파도, 강풍과 같은 열악한 기상환경은 물론이고 때로는 12시간이 넘도록 펭귄 개체 수 조사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빙하로 인해 순식간에 바닷길이 막혀 언제든지 고립될 수 있는 위험한 환경에 항상 노출된다는 점 또한, 바다를 사랑하는 제게도 쉽지만은 않은 조건이지요.

하지만 힘든 순간에도 다시 펭귄에게로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는 건, 이 과학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틱선라이즈에 오른 선원들의 마음에는 남극이 인간으로부터 보호받기를 희망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간절함의 힘으로 남극의‘악마 섬(Devil is.)’‘코리 섬(Corry is.)’‘코크번 섬(Cockburn is.)’ 등을 돌며 해양 생태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의 연구가 아직까지 보호받지 못한 남극을 국제적인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데 기여할 것을 마음 속으로 기대합니다. 바다를 보호하는 일에 ‘해양보호구역’ 지정은 어떤 의미이기에 중요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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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범 그린피스 항해사. 2017년부터 그린피스 이등항해사로 활동하고 있다. 북극해, 대서양, 카리브해 등을 항해했으며 남극 항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구가 더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린피스 항해사가 됐다.